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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유래

마을명 유래
마을명 유래
연 산
  • 삼한시대에 홍성문 대사가 이록을 지나면서 하는 말이 뒷산의 주산을 바라보면서 연부평십자가상(燕浮坪十字街傷)에 연소 명당이 있다 하여 연산(燕山)이라 부르던 것이 1953년 연산(連山)으로 개칭되었다.
남 정
  • 조선 선조때에는 무림면 소재지였으나 193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림면이 구림면에 편입되면서 남정이라 개칭하였다. 옛날에는 이 마을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풍수설에 따라 마을 뒷산에 항아리 3개를 묻어 놓고 음력 2월 1일이면 물을 항아리에 가득 채워놓고 제사를 지낸 뒤 화재를 면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봉 곡
  • 조선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곳에 피난왔던 진주 강씨와 경주 김씨가 정착하여 구암면의 소재지 마을로 봉새집같은 형국이라 하여 봉곡이라 불렀고 또한 마을이 새의 깃털을 닮았다 하여 새실이라고도 불렀으며 1935년 행정지역 개편으로 사곡(沙谷)으로 개칭했고 96년 1월 15일 봉곡마을로 개편되었다.
둔 기
  • 초계 최싸가 1147년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마을 뒷산에는 대장군봉이 있는데 당시 군사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둔기라고 불렀다고 전하고 있다.
이 암
  • 마을의 뒷산에 큰 바위가 있는데 사람의 귀와 같이 생겨 귀바위라고 부르다가 1935년 이암으로 개칭되었으며 마을 입구에 창바위가 있어 건너편 태봉이란 산의 하부능선에 묘를 쓰면 해롭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당산나무는 마을에 도적이 많이 들어와 이것을 막기 위하여 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 기
  • 조선 선조때에 김해 김씨가 처음 터를 잡아 오공동에 정착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이마을의 산들을 넘어 고령 신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새터라 하여 신기로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두 마을을 합해서 신기라고 부르고 있다.
마 흥
  • 조선말 옥천 옹씨가 이주하여 정착된 마을로 마을 뒷산이 말이 일어서려는 형국이라 하여 마흥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또한 마을 주변에는 물통골이라는 약수터가 있어 많은 환자들이 줄을 이은 곳으로 유명하다.
회 룡
  • 이 마을은 면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27Km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 태종때에 청주 한씨가 처음 터를 잡아 이루어진 마을로 호곡이란 마을과 합하여 회룡이라 불리우고 있다.
오 룡
  • 고려말 밀량 박씨와 김해 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하며 당시 이 마을 뒷산에는 소()가 있었는데 그 소에서 용으로 승천을 못하게 된 이무기 다섯 마리가 살면서 이 마을에 자주 피해를 주어 마을 사람들이 이를 메꾸어 버리자 다섯 마리 이무기가 5일동안 계속 울다가 죽었다하여 이 마을을 오룡굴이라 부르다가 1935년 오룡이라 불렀다.
학 현
  • 이 마을은 면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위치한 마을로 조선 성종때에 전주 이씨가 정착한 후 숙종대에 안동 권씨가 이주하게 되면서부터 마을이 번창하게 되었다.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 뒷산이 마치 학이 날아가려고 하는 형국이며 또한 마을이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어 학고개라고 불러오다가 1935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학현이라고 개칭되었다.
통 안
  • 임진외란 때에 마씨와 정씨가 피난 온 것이 정착되어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마을의 형국이 벌통이며 또한 벌을 많이 기르면 통한다 하여 벌을 많이 키우기 시작하였고 벌이 잘 되려면 마을 앞에 숲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대에 심은 정자나무들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벌이 흥하여 마을 이름을 통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율 리
  • 조선말에 해주 오씨가 처음 터를 잡아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당시 밤나무가 많이 있어 마을 이름을 밤골이라고 불리어 오다가 193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율리라 개칭하였다
산 내
  • 조선 중엽대 김씨와 조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고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높은 산 속에 있다하여 산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500m 지점에 고려말 이성계 장군의 장래를 위해 무학대사가 만일을 기도하였다 하여 만일사란 사찰이 지금도 있다.
안 심
  • 원래는 아시네라는 마을과 미륵정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를 합하여 안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 앞 천변에 미륵불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불상이 언제인가 홍수로 인하여 위에서 떠내려 온 것을 주민들이 이곳에 세웠으며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이 미륵불을 모시고 있다.
치 천
  • 고려말 조씨, 한씨, 윤씨가 처음 터를 잡아 마을을 이뤘으며 앞냇가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천의 이름이 치천이었기에 마을을 치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앞 천변에 튼 느티나무가 있는데 마을의 재앙을 막아준다고 하여 옛날에는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당산이 강해서 여름이 되어도 나무주면에는 뱀이나 개미가 전혀 접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금 평
  • 고려말 고령 신씨가 처음 터를 잡아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마을 형국이 옥녀씨가 베를 짜고 있는 것과 같다 하여 금평이라 부르기도 했고 배트라라고 불렀다. 마을앞에 큰 바위가 있는데 하천이 범람하여 배를 타고 통행하기 위하여 배를 매 놓았던 바위라 한다.
황 계
  • 조선 영조때 평산 신씨가 맨 처음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로 마을 앞산이 마치 둥시속에 노란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황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금 상
  • 조선초에 가씨라는 사람이 최초로 터를 잡은 마을로 옆에서 금이 나온다 하여 이름을 금상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방 화
  • 조선 세종때 장수 황씨라는 사람이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마을은 터가 해당함로라 하여 그 뜻을 푸렁 방화라 부르게 되었으며 특히 예부터 충효사상이 특출한 마을로 효자가 많이 배출되어 마을입구 왼편에 화강암으로 경주 정씨 3효비각이 있다.
속 리
  • 고려말에 추씨라는 사람이 정착하여 이룬 마을로 당시 마을의 산속에 속리사라는 절이 있어 이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지금도 절터골이라는 이름이 불려지고 있으며 절이 있었다는 흔적으로 탑이 남아 있다. 또한 이 마을에서는 옛날에 천석부자가 여덟사람이나 살고 있었다고 하며 약 2백여년전 주민들이 앞을 막아야 재물이 손상되지 않는다 하여 느티나무 5백그루를 심었다고 입구에 돌탑이 있어 마을의 재앙을 막아준다고 한다.
운 항
  • 마을이 언제나 구름속에 묻혀 있어 행복한 마을이라고 해서 마을을 운행이라고 불러오다가 1935년 운항으로 개칭하였으며 마을 뒷산 옆 질재골에는 일제시대 일심교 교주가 도를 닦았던 곳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단 풍
  • 삼면이 해발 500m의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마을로 조선 선조때에 전주이씨가 맨 처음 정착하였다. 마을 둘레의 산들이 마치 꽃송이를 이루고 있는 절경으로 중국 고사에서 나오는 황국 단풍을 본따서 단풍쟁이라 불렀다.
유 사
  • 마을 뒷산이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닭사리라 부르다가 1999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월정에서 유사로 분리되었다.
장 암
  • 조선 광해군 원년에 경주 정씨가 처음 터를 잡아 장암이라 불렀으며, 1935년 월정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1999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유사와 행정리가 분리되어 장암이라는 독립마을 이루게 되었다.
오 정
  • 마을 앞에 5그루의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그곳에 정자를 짓고 살면 부촌이 된다는 말을 듣고 정자를 지으면서 오정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상 리
  • 마을 뒤에는 해발 558m의 무이사닝 솟아있다. 앞엔느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 살기좋은 마을로 중구겡 있는 무이산 아래에 있는 마을 형상과 같아하여 그를 본따서 마을 이름을 상리라 부르게 되었다.
자 양
  • 중국의 무림산하에 자양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본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당시 이 마을에는 화재가 빈번하여 한 풍수설에 마을 뒷산이 학의 형이고 좌우청룡은 복지형이라 학과 꿩이 목마른 곳이므로 그곳에 항아리를 묻어 정월 대보름에 물을 가득 채워주고 제사를 지내면 화재가 없다고 하여 이에 따라 이후 화재를 막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구 곡
  • 조선 초기에 이씨가 맨처음 터를 잡았다고 하여 중국 무이산이라는 곳에 구곡리가 있었는데 그 위치와 비슷하여 구곡이라고 개칭하였다.
어은동
  • 구림에서 팔덕면의 경계지점인 동정자재에서 구림천 사이 위치하고 있으며 물고기가 숨은 형상이라하여 어은동이라 칭하였다. 2019년 구곡마을에서 분동되었다..
화 암
  • 고려 공민왕때 진주 강씨, 동래 정씨, 충주 지씨 3성이 이주하여 큰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처음엔 산재된 세 부락을 합하여 안동과 화암 두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하여 내려오다가 다시 합쳐 합리라고 불리어 오던 것이 1935년 화암으로 바뀌었다. 화암은 뒷산의 바위가 마치 꽃과 같고 바위 틈틈에서 꽃들이 되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어 마을 이름을 화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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