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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면 우리지역 자랑거리

문화유적

구암정

구암정 일대의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서술한 「구암정기(龜巖亭記)」를 보면, 맑은 만수탄의 물 흐름에 주변의 특출한 세 봉우리가 감지된다. 이러한 경치를 정면으로 굽어볼 수 있는 곳에 구암정의 터를 잡았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예전에는 정자 둘레에 수십 그루의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을 뿐이다. 또한 구암정 뒤쪽으로는 두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다. 2013년 현재 구암정의 정면을 제외한 삼면에는 나지막이 돌담이 둘러져 있고, 경내로 들어가려면 문을 통해야만 한다. 1990년 06월 30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로 재지정되었다. 남원 양씨 대종회에서 관리한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
    1990. 06. 30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1028
  • 시대
    대한제국
  • 하위 내용 참조 구암정
  • 하위 내용 참조 구암정
  • 하위 내용 참조 구암정

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이 정려는 고려 때 직제학을 지낸 양수생의 처 이 씨의 지조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씨 부인은 남편 양수생이 죽은 후, 당시의 풍습대로 개가를 하라는 부모의 청을 거절하고, 이곳 구미리로 내려와 살면서 아들 양은보를 키워 가문을 잇도록 하였다. 양은보의 후손 중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오게 된 것도 모두 이씨 부인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씨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부인의 행실을 알게 된 조선 세조는 1467년에 정려를 내려 후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비와 정려각은 이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조선 영조 50년(1774)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로 세웠다. 이 정려에 대해서는 1760년에 간행된 「옥천군지(玉川郡誌)」에 조선 후기 성리학자 도암(陶庵) 이재(李縡)가 쓴 '열부이씨전(烈婦李氏傳)'이 수록되어 있으며, 정려비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얘기가 전한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
    2000. 11. 17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568
  • 시대
    조선 영조 50년(1774)
  • 하위 내용 참조 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 하위 내용 참조 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현포보수로 및 중건불망비

가뭄과 홍수로 생활이 어려웠던 때에 제작되었던 보와 수로 및 주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세운 김원보의 불망비이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며, 수로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당시 이 지역 일대는 계속되는 가뭄과 홍수로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받고 있었으며, 관개시설이 없어 매년 흉작을 면치 못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참판인 김원보가 꿈에 보를 개설하라는 노인의 지시를 받아 주민을 동원하여 보를 설치하고 석축을 쌓아 수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된 주민들은 김원보의 은혜를 기리고자 수로 언덕 위에 불망비를 세워두었다. 비는 직사각형의 단순한 형태로, 윗모서리 양 끝을 사선으로 처리하였다. 보와 수로가 제작된 건 영조 12년(1736) 때의 일이다. 현포보수로는 현대에 들어와 다시 농와 황윤현이 보수하였다. 현포보수로 및 중건불망비 우측에는 공적비추진 위원회 위원 16명의 명단과 1968년에 건립한 '농와황공윤현수보공적비(農窩黃公允賢修洑功績碑)'가 세워져 있다. 공적비에는 "농와 황윤현 선생의 지극한 노력의 보람이 있어 우리는 오늘의 완고한 ‘현포보’를갖게 되었으니, 선생이 보수한 지 20여 년, 작고한 지 5년에 새삼 그 공의 크심을 깨닫고 이 작은 비를 세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포보수로 및 중건불망비는 1992년 6월 2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 지정일
    1992. 06. 20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산 2 외 3필지
  • 시대
    조선시대
  • 하위 내용 참조 현포보수로
  • 하위 내용 참조 중건불망비
  • 하위 내용 참조 현포보수로 및 중건불망비 안내판

남원양씨종중문서

남원 양씨 종중에 보관되어 있는 문서로 고려 공민왕과 무왕 때의 양이시와 양수생부자가 과거에 급제하여 받은 홍패(紅牌) 두 점이다. 양이시는 공민왕 2년(1353)에 생원과에 장원급제하고, 공민왕 4년(1355)에 진사의 문과 제22인으로 급제하였다. 이때에 급제자 합격증은 조선시대의 교지(敎旨:임금이 신하에게 명을 전달할 때나 어떤 인물을 임명할 때 해당자에게 전달하는 문서로, 이전의 왕지를 바꿔 부르는 말)와 달리 왕명(王命)이라고 하였다. 홍패는 적색의 두꺼운 순한지에 묵필로 기록하였으며, 가로 34㎝, 세로 64㎝로 조선시대의 교지에 비하여 약간 규격이 작다. 양수생의 홍패는 우왕 2년(1376)에 종사랑장복직장으로 있던 양수생이 문과을방에 2등으로 합격함으로서 왕명으로 받은 합격증이다. 홍패는 적색 한지에 묵필로 쓴 것으로 가로 34㎝, 세로 65㎝이다. 이 문서는 개인의 증빙자료로 뿐만 아니라 고려 후기의 공문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
    1995. 06. 20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귀미2길 14-9
  • 시대
    고려시대
  • 하위 내용 참조 남원양씨종중문서(국가지정)
  • 하위 내용 참조 남원양씨종중문서(도지정)

나주임씨절도공파종중유품

나주 임씨 절도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일괄유물로, 절도공파의 시조가 되는 임진의 4세손인 임용진과 임용진의 당질인 임문수의 것이다. 임용진은 영조 32년(1756)에 태어났으며, 순조 16년(1816)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사, 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교지, 유품, 문집 등은 그의 6세손인 임순택이 보관하고 있다. 임문수는 순조 2년(1802)에 태어났으며, 헌종 15년(1849)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 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고종 16년(1879)의 상소문은 병조참의로 있을 때 창고에 3년 동안의 비축미가 없는 것을 알고 그 대책을 상소한 것이다. 그의 홍패와 교지 24장 및 유품, 문집 등은 그의 5세손인 임준택이 보관하고 있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
    1995. 06. 20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유산길40-10
  • 시대
    조선시대
  • 하위 내용 참조 나주임씨절도공파종중유품
  • 하위 내용 참조 나주임씨절도공파종중유품

합미성

이 성은 언제 쌓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백제 때 만든 것으로 보이며, 현재 둘레 500m 정도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성을 보수하여 병사들의 군량미를 저장하였기 때문에 합미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산성의 특징은 내성과 외성이 있는 점으로, 내성은 성곽의 동북쪽 모서리에 돌출되어 있는데, 성 안에서는 가장 높은 있어 조망대 구실을 한다. 성곽의 규모는 동변 19m, 북변 37m이며, 동쪽과 북쪽 성벽이 외성벽을 겸하고 있다. 성 안쪽과 구분하는 성 줄기는 남쪽 40m, 서쪽 13m이다. 북쪽에는 북문터가 있어 밖으로부터 직접 내성에 출입할 수 있게 되어있고, 내성 남변과 외성 사이의 구석에는 외성에서 내성으로 들어가는 성문터가 있다. 몇 해 전까지도 합미성터의 땅을 파보면 불에 탄 쌀이 나왔다고 한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
    1975. 02. 05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산51
  • 시대
    백제 ~ 조선시대
  • 하위 내용 참조 합미성
  • 하위 내용 참조 합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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