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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화리(淳化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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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신라 때 살기 좋고 인심이 좋은 곳이라 하여 순화리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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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계리(南溪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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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고종 때까지 하천지라 부르다가 1930년에 금산을 뒤에 두고 거울 같은 맑은 시냇물이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남계라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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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리(長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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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씨가 맨 처음 터를 잡았다 하여 맹가당이라 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 한씨가 맹가터를 지나 닭 모양과 같은 바위에 쉬고 있을 때 날짐승이 날면서 닭바위, 닭바위, 닭바위 하고 3번 우는 것을 보고 닭바위라고 부르게 됨. 이후 덕을 쌓아야만 많은 인물이 배출된다 하여 장덕마을이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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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실리(福實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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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원 제씨가 이곳에 처음으로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복동이라고 하다가 복골이라 하였는데 45년에 해방되면서 복실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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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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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 뒷산에서 천용제를 지내고 제사상에 올린 돼지머리는 제를 지낸 후 나무 밑에 묻는 풍속이 전해 내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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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성(校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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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때에는 오산이라고 하였으며 숙종 당시 군수 조태기가 향교를 완공하여 오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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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남(佳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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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잠(佳岑) : 조선 세조 때 신말주와 함께 낙향하여 남산에 살다가 대정으로 이사 와서 살았던 선비의 개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아 찾아보니 현 가잠마을에서 새끼를 낳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이때 노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개가 잠자는 형국의 명당이라 하여 개잠이라 불렀으며 조선 고종 때 가잠이라 하였다.
- 남산(南山) : 오산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남산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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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남(新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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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大亭) : 해방 전까지 이곳에는 일하다 놀 수 있는 30평 정도의 큰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대정이라 하였다.
- 무수(舞袖) : 남산마을의 고령 신씨가 산수 좋은 이곳에 선산을 정하고 묘를 만들어 삼년상을 치르는데 스님이 하늘에서 춤을 추고 내려왔다 하여 무수라고 불렀다고 전해짐
- 탄금(彈琴) : 선녀가 춤을 추고 내려올 때 이곳에서 가야금으로 장단을 맞춘 곳이라 하여 탄금이라 칭함
- 성자(聖慈) : 57년 나환자들이 이사하면서부터 마을을 이루었고 기독교 봉사회에서 신남교회를 설립하면서 성자마을이라고 부르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