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골약수터
조선시대 이래로 순창에서 가장 물맛이 좋은 곳이었다고 전해지는 물통골약수는 원래 주변으로 용의 머리처럼 생긴 산세가 내려와 흔히 두룡정(頭龍井)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며, 사람들은 명당의 기운이 신비의 물로 솟아난다고 믿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970년대까지 이곳에서는 물맞이 행사가 열렸는데, 그 규모가 전라도 남부지방에서 가장 컸다고 하며, 특히 부인병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여 많은 여인과 관광객들이 약수를 마시거나 물맞이를 하러 이곳을 방문하여 그 기운을 받아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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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인계면 노동리658-3
양윤숙 의병장 묘소
대한제국 시기 을사늑약 체결 후 호남의군부의도총독으로 활약한 양윤숙 의병장의 묘이다. 양윤숙은 1875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국화촌에서 양석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또 다른 이름은 양인영(楊寅泳), 양춘영(楊春泳)이며, 호는 춘계(春溪)이다. 1909년 1월 일본군 헌병대, 수비기마대, 일본 경찰 주재소 등을 한밤중에 습격하고 방화하여 많은 수를 사살하였다. 그러던 중 그해 12월 일본군 헌병에게 체포되고, 1910년 3월 광주지방 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그해 4월 순국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양윤숙의 묘는 원래 구림면 국화촌에 있었으나, 199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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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산208-1
지산사
지산사는 최치원과 최익현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1949년에 지었다. 사당으로 쓰이는 영정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최치원은 신라 말의 유학자로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문란한 국정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스스로 외직(外職)으로 물러났다. 그 뒤 그는 열 러 고을의 태수를 역임한 뒤 말년에는 합천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최익현은 구한말 유학자로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임병찬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항일 투쟁에 앞장선 애국지사였다. 최익현은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 일본 쓰시마 섬에 유배되어 단식투쟁을 하다가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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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인계면 지산리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