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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면 우리지역 자랑거리

문화유적

낙덕정

낙덕정은 김노수가 조상 김인후를 기리기 위해 1900년에 낙덕암 위에 지은 정자이다. 김인후는 조선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이자 뛰어난 학자였다. 1545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 순창으로 내려와 훈몽재를 짓고 제자를 양성하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던 그는 물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낙덕정은 20세기 초반에 건립된 정자로는 보기 드물게 팔각 단층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이 어린 시절 이 정자에서 공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
    1975. 02. 05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49-1
  • 시대
    조선시대
  • 하위 내용 참조 낙덕정
  • 하위 내용 참조 낙덕정
  • 하위 내용 참조 낙덕정

구암사

복흥면 봉덕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 소속 사찰. 백제 무왕 37년(서기 636년)에 창건, 조선 태조 원년에 중창하였으며 무학대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붓처럼 우뚝 솟은 문필봉을 가리키며 후세에 선승과 문인이 많이 배출될 것을 예언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 예언과 같이 화엄종주 백파선사와 설파선사, 영호 박한영 스님 등 불교계의 거두가 많이 배출되었다.

  •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131-144
  • 하위 내용 참조 구암사
  • 하위 내용 참조 구암사
  • 하위 내용 참조 구암사

구암사 은행나무

복흥면 봉덕리, 구암사에 있는 은행나무이다. 2004년 9월 10일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구암사를 방문했던 일을 기념하고 조선 태조의 안녕과 왕조의 번창을 염원하는 뜻에서 심었다고 전한다. 6·25 전쟁 때 사찰 및 주변의 숲이 많이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나무는 피해를 입지 않고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자연유산
  • 지정일
    2024. 11. 15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산94
  • 시대
    조선시대
  • 하위 내용 참조 구암사 은행나무
  • 하위 내용 참조 구암사 은행나무

가인김병로선생 생가터 & 가인연수관

복흥면 하리에 있는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 및 복흥면 답동리에 있는 대법원 연수관. 가인 김병로 선생은 순창군 복흥면 하리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통해 법학을 전공한 후 귀국하여 형법·소송법을 강의하고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특히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사법체계 정립과 사법권 독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가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복흥면에는 두 곳의 주요 문화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먼저,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터는 선생의 출생지로서 그의 삶과 사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되새길 수 있는 역사적 공간으로 보존되고 있다. 또한 복흥면 답동리에는 대법원 가인연수관이 자리한다. 이 연수관은 가인 김병로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사법부 구성원의 교육 및 수양을 위한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된 시설이다. 2007년 생가가 위치한 복흥면에 부지를 확정한 후 2009년 기공식, 2010년 준공 및 개관을 거쳐 현재는 대법원 소속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 법원의 공용 연수·세미나 장소로 활용되며 사법부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 가인김병로선생 생가터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길160
  • 가인연수관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가인로442-141
  • 하위 내용 참조 가인김병로선생 생가터
  • 하위 내용 참조 가인김병로선생 생가터
  • 하위 내용 참조 가인연수관
  • 하위 내용 참조 가인연수관

추령장승촌

복흥면 서마리에 있는 관광용 목각 장승 제작 및 전시 공간. 1990년대 초 장승을 조각하는 목공예가 윤흥관이 추령에 정착하면서 추령장승촌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대중적인 장승촌이 조성된 곳은 추령장승촌일 것이다. 1980년대 대학가에 민중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때에 농악과 함께 장승, 짐대 만들기가 성행하였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추령장승촌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앞선 시기의 장승촌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야외 부지에 전국 각지의 전통 장승과 장승 창작품, 아프리카·인도 등지의 장승과 솟대 등이 1,000여 점 전시되어 있다. 작은 전시실에서는 민속자료 100여 점을 볼 수 있다.

  •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복흥면 추령로1792-12
  • 하위 내용 참조 추령장승촌
  • 하위 내용 참조 추령장승촌
  • 하위 내용 참조 추령장승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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