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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면 우리지역 자랑거리

문화유적

만일사(萬日寺)

만일사는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337번지, 회문산 자락 산안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회문산은 해발 837m의 높은 산으로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 즉 다섯 신선이 둘러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으로 예부터 명당 자리가 많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그런가 하면 회문산은 모악산과 음양 관계에 있어 모악산이 어머니 산이요, 회문산이 아버지 산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또한 회문산은 한국전쟁 때 남부군의 본영이 있던 곳이기도 한다. 회문산 끝자락에 만일사가 처음 건립된 것은 백제 때이다. 만일사 사적기가 전해지지 않아 그간 창건연대에 대해 백제시대인 384년(침류왕원년), 혹은 삼국 통일된 후인 673년(문무왕13)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이번 만일사비 조사를 통해 백제 때 창건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760년(영조 36)에 간행된 『옥천지(玉川誌)』에 의하면 만일사는 백제의 원찰이었다고 한다. 이후 만일사는 여말선초 때 무학(無學)대사에 의해 중창되었다. 만일사란 명칭 또한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만 일 동안 이곳에서 기도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만일사가 다시 중건된 것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의 일이다.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새로 건립하였는데 이때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다. 만일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현재 만일사는 대웅전, 요사채 3채, 산신각, 비각, 일주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복 후 만일사는 금산사 관할로 지시를 받아왔으나 1968년 고창군 선운사가 제24교구 본사로 승격되면서 선운사 소속 말사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103-134
  • 하위 내용 참조 만일사
  • 하위 내용 참조 만일사

순창 만일사비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일사의 역사를 기록하여 세운 비. 순창 만일사비(淳昌萬日寺碑)는 순창 회문산 끝자락에 있는 만일사 어귀에 있는데, 음기(陰記)에 사찰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 의하면 백제 때 창건되어 조선의 무학대사(無學大師)[1327~1405]가 중창한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순창 만일사비는 이 같은 만일사의 유래를 담아 사찰 중건 후인 1658년(효종 9)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옥천지』에 의하면 중건 이후의 만일사는 요사채 2채, 동암(東庵)·칠성각(七聖閣)·선적암(禪寂庵) 등 3채의 암자가 있었다. 한편 만일사는 빼어난 산세와 함께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다고 전한다. 내장사 주지(住持) 만암(曼庵)과 야은(野隱) 등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백학명(白鶴鳴) 선사가 만일사의 금화(錦華) 주지(住持)로부터 법통(法統)을 이어받았다. 또 불교 전문학교를 설립하고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스승이며 조선의 천재로 알려진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1870~1948] 스님도 한때 만일사에서 수도하였다. 그리하여 사찰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으나,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절이 폐허가 되었다. 1954년 다시 법당을 세우기 시작하여 1998년 대웅전, 일주문, 요사채 각 1동씩을 건립하여 도량을 갖추었다. 그동안 무학대사가 만일사를 중건하였다는 말은 전하여 왔지만, 이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하였는데 순창 만일사비를 통해 비로소 무학대사의 중창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만일사’란 명칭은 무학대사가 이성계(李成桂)[1335~1408]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만 일(萬日) 동안 기도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만일사를 찾은 적이 있으며, 이때 민가에 들러 먹던 고추장 맛이 어찌나 좋던지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왕이 된 후에도 순창 고추장을 진상하게 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무학대사 이전에도 여러 차례 중건이 있었겠지만 기록이 없어 내력을 알 수 없다.

  •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 지정일
    2017. 11. 03
  •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103-134
  • 시대
    조선시대
  • 하위 내용 참조 순창 만일사비
  • 하위 내용 참조 순창 만일사비

회문산 6·25 양민 희생자 위령탑

구림면 안정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좌우익 대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 1948년 여순사건에서 패퇴한 패잔병 가운데 일부가 회문산(回文山)에 입산하면서 회문산에서의 빨치산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후 1950년 9월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연합군의 북진으로 갈 길을 잃은 좌익 동조 세력이 회문산에 모여들면서 활동은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이들을 토벌하기 위한 군경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양민들이 희생되었다. 이때 희생된 양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2000년 6월 20일에 구림면 청년회가 주관하여 순창군에서 6·25 양민 희생자 위령탑을 건립, 매년 6월 25일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내
  • 하위 내용 참조 회문산 6·25 양민 희생자 위령탑
  • 하위 내용 참조 회문산 6·25 양민 희생자 위령탑

최익현 선생 피체지

면암 최익현 선생이 1906년 의병을 일으켰다가 일본군과 진위대에 의해 체포된 곳이다.(구림면 화암리) 최익현 선생은 조선 말기 거유(巨儒)로서 1855년 정시무과에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사험부지평, 사관원정언,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 의병장이시다. 최익현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8도 사민에게 포고문을 내어 항일투쟁을 호소하고 임병찬, 임학 등과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약 400명을 이끌고 순창 구림면 화암리에서 관군과 합세한 일본군과 싸우려다 왜적이 아닌 동족과는 싸울 수 없다 하여 전투를 포기하고 스스로 체포되어 쓰시마(대마도)에 유배되었다. 화암리 도로변에는 이곳이 최익현 선생 의피체지임을 알리는 글이 있다.

  •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화암리556-24
  • 하위 내용 참조 최익현 선생 피체지

돈헌 임병찬 의병장 묘역

2024년 5월 16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 1906년 면암 최익현 선생과 함께 병오창의(丙午倡義)를 하여 회문산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하였던 임병찬 의병장 묘소이다. 1906년 2월 최익현과 더불어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군사 모집과 훈련, 군량미 조달 등의 책임을 맡아 태인, 정읍, 순창, 곡성 등을 점령하고 관곡을 취해 군량을 확보하여 진용을 정비하였다. 1912년 9월 고종황제가 내린 밀조에 따라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였으며 총사령관이 되어 일제의 내각 총리대신, 총독 이하 모든 관헌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를 보내 강제 병합의 부당성을 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 대해 일제의 통치에 한국민이 불복하고 있음을 표명하고, 국민 대중에게 국권 회복의 의기를 일으켜 항일 의병을 계획하였고 일제 경찰에 의해 보안법 위반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249
  • 하위 내용 참조 돈헌 임병찬 의병장 묘역
  • 하위 내용 참조 돈헌 임병찬 의병장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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