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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신(昌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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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말 고종 때 역촌으로 사또가 전남 옥과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경유할 때에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였다.
- 창신(昌新)을 193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창신(昌申)으로 바뀌었다. 순창읍에서 동쪽 1km 거리에 있고 옛날에 역졸이 있었기 때문에 역몰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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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鼎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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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지명을 새터라 하였고 마을 뒷산의 모습이 솥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솥(鼎)자 정동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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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곡(乾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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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건실 또는 건곡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진 것은 건지산(乾芝山)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하여 마를 건(乾)자, 골 곡(谷)자를 붙여 건곡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마을 형국은 선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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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촌(鶴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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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은 아래 건실 또는 건곡이라 불렀으며 학촌이라는 이름은 풍수설에 뒷산에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학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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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판(金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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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앞산에 금이 나와 금굴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풍수설에 의해 금판리라 부르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쇠판리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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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이(外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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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배씨의 13대조와 평택 임씨의 12대조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어 내이 마을과 합하여 법정리를 이루어 마을이 밖에 있어 바깥 이동이라 부르다가 조선 말기부터 외이리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이 주형(舟形)이기 때문에 마을 안에 우물을 파서는 안된다고 하여 공동 우물을 마을 주변에 5개를 파서 나무를 1주씩 심어 해마다 5 샘 5 당산제를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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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이(內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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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 신씨의 12대조가 처음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었다. 외이리에 속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마을이 안쪽에 있어 안이동이라 부르다가 197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내이리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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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교(梧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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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머덜이라 불렀으며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시냇물에 오동나무 교량이 있어 오교리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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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촌(柳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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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드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버들이라 하였으며 유촌, 유천, 책암이 한 마을을 이루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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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柳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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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구역 개편으로 버들에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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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암(冊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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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 채씨가 마을을 이루었으며 마을 뒷산에 선인독서(仙人讀書)라는 명당이 있어 그곳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 하여 앞 산에 책인 것과 같은 큰 바위가 있어 책바위라 부르다가 책암이라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일부는 남원시 대강면에 속해 있다가 1987년 대통령령으로 순창군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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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수(無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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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부터 무시내라 부르다가 무수리로 부르게 된 것은 마을의 위치가 외세의 침입을 받지 않는 여건으로 언제나 안정되고 평화로워 아무런 근심이 없는 마을이라 해서 무수리라 부르게 되었다.
- 주민들의 협동 단결은 1980년 176m 섬진강에 유적교를 건설하여 교통 불편을 스스로 해결, 단결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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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탄(花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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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을 지낸 최경옥 (본관은 전주)이 태어난 마을이다.
- 마을은 원래 상촌, 중촌, 하촌의 3개 마을이 합하여 형성된 마을을 이루어 중촌은 꽃의 마음, 꽃심 또는 꽃여울이라 불러오다가 화탄으로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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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탄(月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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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탄마을에 속했다가 197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탄이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