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포리(玄圃里) |
- 동계면의 현무라 할 수 있는 사자봉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온 산맥이 오동리 뒤에서 솟아오른 자라봉을 주산으로 관전리 동계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해발 93m의 산맥이 흘러 동계초등 학교까지 같은 해발 93m로 내려온 이 마을이 감밭이다 수원이 없어 모든 농지가 밭뿐이었기에 감음밭이라 하여 감을 '현(玄)'자와 밭'포(圃)'자를 쓴 것으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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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리(西湖里) |
- 약 300여년 전 남원부에 속해 있을 당시 남원부에는 동서남북 에 4곳의 국창이 있어 서쪽에 있는 이 창고를 지칭하여 서창 이라 했다. 마을 앞에 호수가 있으므로 서창의 서와 호수의 호를 붙여 마을이름을 서호라 명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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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리(龜尾里) |
- 구미의 이름은 거북형상의 바위로 인하여 얻어진 것이라 함 남원양씨(南原楊氏)의 종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을 지칭하 여 가운데골(中洞), 동쪽마을을 장작골(龍洞), 서쪽마을을 뒤주 골(注書洞) 이 3개마을을 통칭하며 동남북 삼방이 둘러놓은 듯한 산중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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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치리(於峙里) |
- 해발 630m 되는 용골산을 서편으로 하고 용골산 한 가닥의 산맥이 동편으로 내려와 있는 산맥의 중턱에 남동쪽을 향하여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어치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느제 점촌ㆍ돌무덤ㆍ놋점ㆍ멀테의 5개마을을 통칭하였는데 오늘날 에는 놋점과 멀테는 무인촌이 되어 3개마을이 어치리를 형성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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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리(同心里) |
- 동심리는 同心ㆍ秋同ㆍ阿同ㆍ梧同 4개 마을을 통칭한 행정구 역을 말한다. 무량산 기슭에 동남방을 안대로 心字형으로 포 근하게 자리잡은 마을로 오동방월(梧洞半月)이라는 물명에서 동심(同心)으로 명명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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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리(官田里) |
- 이 마을은 현재 벼슬관의 관전(官田)이나 본래는 황새?관? 자를 쓰는 관전(?田)리 였다고 한다. 황새는 원래 공기좋고 물좋은 공해 없는 신선한 곳과 이름난 좋은 터에서만 사는 새 라고 평판이 나 있어 이 관전리는 환경이 좋고 길지(吉地)라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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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리(新興里) |
- 백제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고 윤씨가 처음으로 토착하였다 한다. 합미산에 합미성이 있어 마을 이름을 재앞(城前)이라 하였으나 신흥리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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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리(柳山里) |
- 현포리에서 북으로 사자앙천태산이 우뚝 솟아있는 밑에 자리 잡고 있으며 순창ㆍ남원ㆍ임실이 각각 16㎞에 위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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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리(理銅里) |
- 이 마을의 형상은 반월형(半月形)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동반 월(東半月)은 길지(吉地)라 하였는데 이월(理月)이라 부르다가 연구세심(年久歲深)한 동안 이울로 되고 또 이동(理銅)이라는 지명은 이울ㆍ동마동ㆍ한사개 등의 지명배경에서 나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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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리(水亭里) |
- 동계면의 최동단에 있는 마을로 소재지에서 동북방향으로 약 59㎞지점에 석산마을이 있고 더 올라가면 방아재 양촌ㆍ음촌 내촌이 있다. 수정마을 이름은 수정(水晶)이 난다는 설로 인해 오늘의 수정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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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리(舟月里) |
- 면소재지에서 정동방향으로 5㎞쯤 되는 동계천변에 당그래봉 선인무수(仙人舞袖)의 주령을 북으로 동계천을 앞에 두고 길 게 마을 형국이 행주형(行舟形)으로 침강반월(侵江半月)이라 하여 주월리 , 일명 시저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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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령리(內靈里) |
- 조선시대에 남원군 영계방(靈溪坊) 내령 안영계에 있다가 1907년 임실군에 속했으며 1914년에 영계방과 아동방이 합하 여 동계면으로 편입되어 순창군으로 되었다. 1935년에 행정구 역 개편으로 내령마을과 강촌마을로 구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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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리(壽墻里) |
- 원래 남원부 영계방으로 있다가 1906년 일제시대 행정개편에 의하여 영계방과 아동방이 순창군으로 편입되고 동계면 수장 리라고 개명되었다. 동계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신촌교를 건 너서 약 1㎞를 가면 가작마을이 있고 수장마을, 하외령마을, 상외령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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