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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SUN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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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유래

마을명 유래
마을명 유래
立石(입석) 마을
  • 옛지명은 선돌이라 불리웠고 198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입석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新坪(신평) 마을
  • 마을은 3백여년전에 구룡리 입석마을에서 전주이씨 흥덕군파가 새로운 터를 잡아 신평이라 했다. 또 새들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어 신평이라칭함.
新基(신기) 마을
  • 마을은 새터마을로 불렀으며 행정구역 조정에 의해 1999.1.9자로 구항에 서 신기로 분리되었음
龜項(구항) 마을
  • 마을은 맨처음 진주강씨가 마을터를 잡았으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거북 이 목터라하여 구항이라 칭함
射亭(사정) 마을
  • 옛지명은 활꾸지라 불렀으며 임진왜란으로 피난 온 전주이씨가 정착 후 산세가 좋은 곳에 서당을 건립하여 많은 후손을 양성해온 곳임
內月(내월) 마을
  • 뒷산의 모양이 달을 그리워하는 토끼의 형상이라하여 “달실”이라 불리 웠음. 8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곡을 내월,외월로 분리하였음
外月(외월) 마을
  • 뒷산의 모양이 달을 그리워하는 토끼의 형상이라하여 “달실”이라 불리 웠음. 8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곡을 내월,외월로 분리하였음
廣岩(광암) 마을
  • 뒷산에서 바라볼 때 마을이 배의 형국이라 하여 “배실”로 불리웠음. 1914년 행정개편때 마을 윗산 큰바위를 본따서 광암이라 칭함
太子(태자) 마을
  • 마을 뒷산의 형상이 왕자의 형상이라 하여 “태자”로 부르게 되었고 오늘에 이름
上竹(상죽) 마을
  • 옛 부터 대숲말 또는 죽림동으로 칭하였고 조선말까지 팔등방의 소재지로 무이서원(武夷書院)이 있었으며 일제시대 청계리로 개칭하고 198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죽과 하죽으로 분리되었음
下竹(하죽) 마을
  • 옛 부터 대숲말 또는 죽림동으로 칭하였고 조선말까지 팔등방의 소재지로 무이서원(武夷書院)이 있었으며 일제시대 청계리로 개칭하고 198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죽과 하죽으로 분리되었음
剛泉(강천) 마을
  • 천혜의 군립공원 강천산이 위치한 마을이며, 1999.1.9 행정구역 조정으로 청계리에서 강천으로 분리되었음
白岩(백암) 마을
  • 마을은 5백여년전에 황씨와 유씨가 터를 잡아 살았다고 함. 마을옆 안선 골에 방앗돌이 있었는데 그 바위가 하얗게 생겨 백암이라 칭함
梨木(이목) 마을
  • 마을뒤쪽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골이라 불리다가 그후 행정구역 개편으 로 이목마을이라 칭함.
通川(통천) 마을
  • 마을 뒤 둔터에 남원윤씨가 터를 잡고 살았는데 도사가 마을 맞은편에 있는 초래바위 촛대를 떼어버리면 잘 살 수 있다고 하여 윤씨는 촛대를 뗴어버림. 그 뒤 그곳에서 3일간 붉은 피가 흘렀다고 하여 통천이라 칭함
新興(신흥) 마을
  • 옛 지명은 “분통”이라 하다가 1985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쌍통으로 칭해오다,2003년 3월 1일 분리되어 신흥으로 칭함
八旺(팔왕) 마을
  • 지금부터 600백여년 전에 선녀가 터를 잡아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전부 등극하여 정승에 올랐다하여 팔왕이라 칭함
藏財(장재) 마을
  • 한솟태라는 곳에서 국씨가 살다가 그곳에 뱀이 많이나와 살지못하고 이 마을로 이주하여 살면서 부를 누리기 위하여 장재라 칭함
長安(장안) 마을
  • 1천 5백여 년 전 하씨, 윤씨, 김씨가 취락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를 저장하던 군창이 있었다 하여 평창으로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안마을이라 칭함
東古(동고) 마을
  • 5백여년전 김해김씨의 자손으로 덕망이 높은학자가 산수좋은 고을을 찾 아 이곳에 정착 동고지라 하다가 행정구역 개편(1972)으로 동고라 칭함
平地(평지) 마을
  • 이곳 이름을 소머리와 같다고하여 와우터라 했고 또한 소의 핑경을 비유 핑경터라고 하다가 말이와전되 핑징으로 발음 오늘에는 핑징이라고 하였으나 행정구역 개편 (1972년)으로 평지라고 칭함
德進(덕진)마을
  • 현 팔덕면이 1897년 팔등방과 덕신방으로 분리시 덕진방의 소재지, 효례골이라고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면서 소례골이라고도 함
台村(태촌) 마을
  • 마을은 5백여년전 남원윤씨가 남원에서 살다가 산동지구 구령굴로 이사 하여 생활하고 있다가 태봉산 아래터가 좋다하여 이곳으로 이사하여 살았다고 함
龍頭(용두) 마을
  • 이 마을은 8백여년전 옥천조씨가 처음 터를 잡으면서 용이 여의주를 물 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용두라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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